성경으로 읽는 한국 교회 이야기 (8) | 운영자 | 2020-12-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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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너희는 성경을 어떻게 읽느냐?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누가 10:25-26)
율법교사라면 ‘성경 박사’다. 성경을 읽고, 외우고, 풀이하고,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 직업이다. 성직 중의 성직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불안했다. 아무래도 자신은 ‘영생 밖’에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주위에선 그를 부러워하였지만 영생 문제에 자신 없는 자신만은 속일 수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 왔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언제나 그렇듯이 대답 대신 질문을 던지셨다. “성경에 뭐라 기록되었고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느냐?”
문제는 성경을 읽는 방법에 있었다. 성경을 읽되 어떻게 읽느냐가 문제였다.
십자가를 지고 천리 길을 걸어온 사람들
1886년 겨울, 서울 정동에 있던 언더우드의 집에 낯선 손님들이 찾아 왔다. 황해도 장연군 소래에서 올라온 이들이었다. 1882년 만주에서 세례를 받고 들어온 서상륜이 의주-솔래-서울을 오가며 복음을 전하여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에 세례지원자들이 생겼는데 이들은 선교사가 자기 마을로 내려와 세례 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정부의 눈치를 보며 선뜻 지방 전도에 나서지 못했다. 그래서 기다리다 못해 그들이 서울로 올라온 것이다. “저희에게 세례를 주십시오.” “당신들이 누구인줄 알고 세례를 줍니까? 기독교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선교사와 소래 교인들 사이에 신앙 문답이 시작되었다. 이미 3년 넘게 성경을 읽으며 신앙생활을 해왔던 터라 선교사의 질문에 막힘이 없었다. 그래도 믿기지 않은 듯 언더우드가 의심하는 눈치를 보이자 그들은 두루마기를 벗고 돌아섰다. 등에는 하나 같이 나무 십자가가 묶여 있었다. “그게 뭐요?”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세례를 받기를 결심하였습니다. 서울에 선교사님이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기다리다 못해 올라오기로 했는데 출발하기 전에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라.’(마태 16:24) 는 구절을 읽었습니다. 성경에서 예루살렘은 곧 서울이니 우리가 서울에 올라가면서 그냥 갈 것이 아니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는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서 각자 십자가를 만들어 지고 온 것입니다.”
나무 십자가를 몸에 묶고 ‘천리 길’을 걸어온 소래 교인들의 소박한 믿음에 신학교를 갓 졸업하고 나온 20대 선교사가 감동할 것은 당연했다.
빚 문서를 태운 부자 교인
강화에선 이런 일도 있었다. 1900년 강화 북부 해안 홍의마을에 종순일(種純一)이란 부자 교인이 있었는데 마을에서 그에게 돈을 빌려다 쓰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성경을 읽다가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를 읽었다. 임금에게 1만 달란트 빚 진 신하가 그 빚을 탕감받고 나가다가 자기에게 1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나 그의 빚을 탕감해주지 않고 옥에 가두었는데 그 사실을 안 임금이 화를 내며 그를 다시 잡아 옥에 가두었다는 내용의 말씀이었다.
‘마을 부자’ 종순일은 이 말씀을 읽고 며칠동안 고민하다가 주일 오후, 예배를 마치고 자기에게 돈을 빌려간 마을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들였다. 마을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모였다. 종순일은자기가 읽은 마태복음 18장 21절 이하 말씀을 들려준 후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오늘 이 말씀에 나오는 악한 종이 바로 나외다. 내가 주님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은 것이 1만 달란트 빚 탕감 받은 것보다 더 크거늘, 내가 여러분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 돈을 받으려 하는 것이 1백 데나리온 빚을 탕감해주지 못한 것보다 더 악한 짓이요. 그러다 내가 천국을 가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오늘부로 여러분들에게 빌려준 돈은 없는 것으로 하겠소.”
그는 빚 문서를 꺼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불살라 없앴다. 그 자리에 동석했던 교회 전도사가 증인이 되었다. 빚을 탕감 받은 마을 사람들이 교인이 된 것은 당연하다.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종순일은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마 19:21)는 말씀을 읽고 자기 재산을 처분하여 교회에 헌납했다. 교회는 그 돈으로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교회 묘지를 구입했다. 또 얼마 있다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각 지방과 고을에 보내셨다”(눅 10:1)는 말씀을 읽고 아내와 함께 괘나리 봇짐을 메고 남쪽 길상면으로 전도 여행을 떠났다. 그 후 “땅 끝”(행 1:7)을 찾아다니며 전도했다. 그는 그렇게 강화, 석모, 주문, 옹진 등지 외딴 섬을 돌며 십 수 처 교회를 개척하였고 평생 가난한 전도자로 생을 마쳤다.
종 문서를 불태운 과부 부인
같은 무렵, 강화읍교회(현 강화중앙교회)에 ‘과부 교인’ 김씨가 있었다. 자식도 없이 혼자였지만 재물에는 여유가 있어 복섬이란 여종을 부리고 있었다. 팔십이 넘어 믿기 시작했는데 교회에 나가면서 한글을 배워 성경을 읽게 되었다. 그러던 중 마태복음 18장을 읽다가 18절에서 멈추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김씨 부인은 이 말씀을 자신에 적용하였다. 즉, 몸종 복섬이를 데리고 있는 것을 ‘매는 것’으로 풀었던 것이다. 그는 다음 주일 교인들을 집으로 초청한 후 복섬이를 방안으로 불러 들였다. “내가 성경 말씀을 보니 우리 주인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다 같은 형제라. 어찌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주인 노릇을 할 수 있겠소? 또 내가 복섬이를 몸종으로 부리는 것이 땅에서 매는 것인즉 그리고서 어찌 하나님의 복을 받겠는가?”
김씨 부인은 문갑에서 복섬이의 종 문서를 꺼내 교인들이 보는 앞에서 불살라버렸다. “복섬아, 지금 이후 너는 내 종이 아니다. 너는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내 집을 나가도 된다.”
그러자 놀란 복섬이가 그에게 매달렸다. “마님,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제발 이 집에서 나가라고 하지만 말아 주세요.”
전도사의 조언을 받아들여 김씨 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매달리는 복섬이를 양녀로 들이기로 했다. 종에서 양녀로 신분이 바뀐(롬 8:14) 복섬이는 더욱 정성스럽게 김씨 부인을 섬겼고 김씨 부인 역시 늘그막에 얻은 딸로 더욱 기뻤다. 이 광경을 본 교인들의 감동 또한 컸다.
몸으로 읽는 성경
이런 식이었다. 한국 교회 초대 교인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in a literal sense) 읽었다. 강화에서 어떤 교인은 예수님께서 맹인을 고치실 때 했던 것처럼 침으로 갠 진흙을 맹인 눈에 바르고(요 9:6) 기적이 나타나기를 기다려 선교사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선교사들은 이 같은 ‘문자적’ 신앙을 미신적인 것이라며 우려했지만 한국인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받은 감동을 ‘문자적으로’ 실천함으로 뒤이어 나타날 이적에 기대를 걸었다. 이들의 ‘문자주의’ 신앙은 입으로만 “성경은 영감으로 씌어진, 문자적으로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며 성경에 대한 이성적 해석 자체를 봉쇄하는 오늘의 근본주의 신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 선배들의 성경 신앙은 억지 믿음이 아닌, 감동에 의한 실천 믿음이었다. 성경을 읽되 이해하기보다는 행하기 위해 읽었다. 그 결과 머리가 아닌 몸으로 성경을 읽는 한국 교회 특유의 소박한 신앙 전통이 수립되었다. 이것은 ‘영생 문제’로 불안해서 예수님을 찾아 왔던 율법 교사에게 알려주신 해결책 바로 그것이었다.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누가 10: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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