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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 읽는 한국 교회 이야기 (9) 운영자 2021-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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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낮아지고, 높아지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는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리라.”(누가 3:4-6)

 

모든 복음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도입 부분에서 하나 같이 세례자 요한을 등장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그에게 길 닦는 자”, 즉 굽은 길은 곧게 펴고, 둔덕은 깎아서 낮추고, 웅덩이는 메워서 높임으로 요철(凹凸)이 심한 길을 평탄케 만드는 역할을 부여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리스도의 복음이 임할 때 나타나는 중요한 현상 중의 하나가 낮은 것은 높아지고, 높은 것은 낮아지는평준화 현상이다.

백정이 예수를 믿으면

반상(班常)의 질서가 엄격했던 19세기 말 상황에서 천민은 양반들과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없었다. 천민 중의 천민으로 불리던 백정이 그랬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어른 대접을 받지 못했고 호적조차 없어 백성 대접도 받지 못했다. 결국 백정들끼리 집단촌을 이루며 살았는데 양반들에게 이런 백정 마을 사람들은 불가촉’(不可觸, the untouchable) 경계 대상이었다.

1895년 무렵, 서울 관자골(지금 관훈동 부근)에 있던 백정 마을에 박성춘(朴成春)이란 백정이 있어 중병에 걸려 절망적 위기에 처했는데 그 소식을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무어(S.F. Moore)가 듣게 되었다. 자신이 운영하던 예수교 학당에 다니고 있던 그 집 아들 봉출이를 통해 사정을 알게 된 무어는 제중원(후의 세브란스병원) 선교사 에비슨(O.R. Avison)을 데리고 관자골을 찾아 갔다. 에비슨은 뛰어난 의술로 고종의 시의(侍醫)가 되어 궁궐을 출입했는데 시의가 백정 마을에 나타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에비슨은 정성스럽게 치료하여 박성춘을 살려 냈다.

박성춘은 은혜 갚는 심정으로 무어 선교사가 하던 교회에 나갔다. 그런데 그 교회는 곤당골(지금 미동 롯데호텔 부근), 양반 마을에 있던 양반 교회였다. 그런 교회에 백정이 나왔으니 문제가 터질 것은 당연했다. 양반 교인들은 무어 목사에게 어떻게 양반 교회에 백정이 나올 수 있느냐?”며 박성춘을 다른 교회로 보낼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무어 목사는 하나님 앞에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며 그들의 요구를 일축했고 결국 양반 교인들은 홍문수골(지금 광교 조흥은행 본점 부근)에 따로 교회를 세우고 나갔다. 이 모든 과정을 목격한 박성춘은 충격도 받았지만 오기도 생겼다. 양반들이 떠난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서울 근교 백정 마을을 찾아다니며 전도하였다.

백정으로 태어나 사람대접도 받지 못하고 살아온 우리를 사람대접해 주는 종교가 왔다.”

사람대접 해 주는 종교’ - 박성춘에게 교인 된다는 것은 곧 인간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의 메시지는 같은 한을 안고 살아가던 백정들에게 호소력이 있었다. 곤당골 교회는 이런 백정과 천민들로 가득 찼다. 홍문수골로 나간 양반들은 이런 곤당골 교회를 보고 첩장교회’(‘첩년들과 백장놈들이 다니는 교회라는 뜻)라며 무시했지만 곤당골 교회는 계속 성장하였다. 그리고 3년 후, 교회를 합치자는 홍문수골 교인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탑골(지금의 인사동)에 새 예배당을 마련하였다. 이것이 지금의 인사동 승동교회의 출발이다. 1911년 승동교회에서 처음으로 장로를 뽑을 때, 박성춘은 양반출신 후보들을 누르고 초대 장로로 선출되었다. 그는 내친김에 정부를 상대로 백정 차별 정책 철폐 탄원운동을 전개하여 백정 해방운동가로 일약 유명 인사가 되었다. 189810월 독립협회가 주관한 만민공동회에 시민 대표로 나가 양반과 정부 관료들 앞에서 충군애국에 관하여 일장 연설을 한 것도 그의 출세(?)를 반영한 것이었다.

이처럼 복음은 민중 계층에게 인간화’(人間化)로 해석되었다. 이들은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고귀한 피조물로서 어느 누구에게도 지배받아서는 안 될 천부의 인권 소유자인 것을 깨달았다. 이들에게 복음은 상승(上乘, upward) 체험의 감격으로 연결되었다. 직업(세리)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던 여리고의 삭개오가 주님으로부터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누가 19:9)는 선언을 들었을 때 느꼈던 감격 바로 그것이었다.

양반이 예수를 믿으면

일제시대 한국 기독교를 대표했던 양심적 민족주의 신앙인 월남(月南) 이상재의 경우는 정반대다. 일찍이 정치에 뜻을 두어 개화파 지도자 박정양의 문하에 들어가 출세의 길을 달려 1894년 무렵에는 승정원 우부승지, 경연관 참찬관 벼슬을 얻어 고종에게 직언할 수 있는 정삼품 당상관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는 박정양을 수행하여 1881년 일본, 1887년 미국을 방문한 적이 있어 서구 문명에 대해 어느 정도 열린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나 유교 정신만은 지켜야 한다는 수구적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래서 1896, 미국에서 기독교인이 되어 돌아온 서재필과 윤치호가 독립협회라는 정치적 시민단체를 결성하였을 때 부회장으로 참여는 하면서도 집회 때마다 기도와 찬송을 불러 독립협회를 기독교적 시민운동으로 전개하려는 서재필이나 윤치호의 시도를 봉쇄하였다.

그런 그가 1902년 보수파가 꾸민 정치적 음모사건에 휘말려 아들과 함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감옥은 독립협회 해산(1899) 이후 자신과 같은 처지로 갇힌 정치범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승만신흥우김정식유성준홍재기안국선김 린 등 하나 같이 양반 소리를 듣고 있던 개화파 인사들이었다. 이상재는 자신을 무고한 보수파 인사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으로 세상이 변하기만 기다렸다. 그러나 투옥 기간이 2년을 넘자 절망과 불안이 그를 감쌌다.

그 무렵, 감옥 안에 도서실이 있어 선교사들이 넣어준 기독교 책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이상재는 이런 책들을 처음엔 거들 떠 보지도 않았지만 세월이 지나자 빌려 읽기 시작했다. 1887년 미국에 갔을 때 통역으로 나왔던 중국 공사관 직원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성경을 읽다가 요망한 책이다.”며 던져버렸던 것을 감옥 안에서 다시 읽게 되었다. 상황이 바뀌니 느낌도 달랐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날 비몽사몽간에 위대한 임금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호통을 쳤다.

내가 네게 믿을 수 있는 기회를 두 번 주었거늘 그 때마다 거절하였다. 그래도 네 생명을 보전하여 이 곳에 두었고 이번이 마지막으로 너와 네 민족이 진보할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주노라.”

이 꿈을 꾸고 난 후 그는 두려운 마음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는 유교의 가르침만 진리라고 생각하여 성경을 무시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지금까지 자신이 지은 죄를 통회자복하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에 가득 찬 진리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심으로 오는 감격의 체험이 뒤따랐다. 유학자, 벼슬 한 자의 교만과 증오 대신 그리스도의 겸비와 사랑에 사로잡혔다.

이런 개종 체험은 같은 감옥에 있던 다른 정치범들에게도 동시다발적으로나타났다. 감옥 안에서 예수를 만난 이들 정치범들은 1904년 어간에 모두 출옥하여 새로 만든 황성기독교청년회(YMCA)를 통해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민중 속에서 민중을 섬기는새로운 차원의 사회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 양반출신 정치범들에게 예수 체험은 기득권을 포기하고 자신을 비우는 겸비 체험(2:6-7)이었다. 곧 세상으로 내려오신 그리스도의 하강(下降, downward) 체험이었다.

복음 안에서 만난 양반과 민중

이처럼 기독교 복음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 때 당시 양반과 민중 계층은 함께 자리를 할 수 없는, 갈등과 반목의 관계였다. 나면서부터 눈높이가 달랐다. 그러나 예수 체험을 통해 바뀌었다. 민중 계층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달았고, 양반 계층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사람의 아들임을 깨달았다. 민중 계층은 높아졌고, 양반들은 낮아졌다. 평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로써 복음 안에서 두 계층이 만났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갈등을 해소하는 것으로 임한다. 그 나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비움과 나눔으로 성취된다. 그리스도인 됨의 기초 단계인 회개는 이런 식으로 구체적인 표현을 요청한다.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라.”(누가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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