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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 읽는 한국교회 이야기(3) 운영자 2019-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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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의 마게도니아인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16:9)

살다보면 세상 일이 맘 먹은대로 되지 않아 속상할 때가 많다. 그럴 때 신앙인들은 자기 생각과 다른 하늘의 뜻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2차 전도 여행에 오른 사도 바울도 그랬다. 처음 생각은 1차 전도여행지였던 아시아 지방을 돌면서 뿌려진 복음의 결과가 어떠한지 둘러 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가는 곳마다 실패했다.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는”(16:7) 때문이었다. 결국 바닷가 드로아까지 밀려 갔고 그 곳에서 꿈 속에 건너 와 도와달라는 마게도냐 사람을 만났다. 그제서야 하늘의 뜻을 깨닫고 배를 타고 에게해를 건넜다. 이로써 아시아에 제한되었던 복음 선교가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똑같은 방식으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전파된 복음이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 전파되었다.

뒤바뀐 유학 목적

만주에서 우리말 성경이 처음 인쇄되어 나올 무렵인 1882년 여름 국내에선 임오군란이 일어났다. 대원군을 중심한 수구 세력과 명성황후를 중심한 진보 세력의 무력 충돌로 발전된 이 사건 와중에 명성황후의 목숨을 지키는데 공헌한이수정(李樹庭)이란 양반이 있었다. 그는 사건이 정리된 후 고종의 후의를 입어 일본 유학 길에 올랐다. 처음엔 농학(農學)과 법률 등 개화된 문명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18829, 일본에 도착한 직후 당시 일본의 대표적 농학자였던 츠다센(津田仙)을 만났다. 도쿄에 농학사’(農學社)를 설립하고 일본 농업의 근대화 작업을 지휘하고 있던 츠다센은 유럽 유학 중 세례를 받고 돌아온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이수정은 츠다센을 방문해 대화하는 중 거실에 걸려 있던 한문 족자에 눈길이 쏠렸다.

虛心者福矣 以天國乃其國也 哀慟者福矣 以其將受慰也 溫柔者福矣 以其將得土也 飢渴慕義者福矣 以其將得飽也 矜恤者福矣 以其將見矜恤也 淸心者福矣 以其將見上帝也 和平者福矣 以其將稱爲上帝子也 爲義而見窘逐者福矣 以天國乃其國也.”

마음을 비운 자는 복이 있도다. 천국이 그의 나라가 될 것이니.

슬피 우는 자는 복이 있도다. 장차 위로를 받을 것이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도다. 장차 땅을 얻을 것이니.....”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산상 팔복말씀이었다. 이수정은 지금까지 보아 왔던 동양의 고전 글귀와 다른 신선함을 느꼈다. 그들의 대화는 자연히 족자의 글풀이로 옮겨졌고 츠다센은 이 호기심 많은 이방인에게 족자 글귀의 원전인 한문 성경을 선물로 주었다. 숙소로 돌아온 이수정은 낯선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성경 읽기에 몰두하던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낯선 사람사람 둘이 책을 한 보따리씩 안고 그에게 다가왔다.

그게 무엇이요?”

당신 나라 조선에 가장 귀한 책이오.”

무슨 책이요?”

성경이오.”

조선에 가장 귀한 책’, 성경에 대한 외경스런 탐구가 계속되었다.

읽을수록 그 책에 빨려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믿기로 결심하고 1883429일 도쿄 로게츠죠(露月町) 장로교회에서 미국 선교사 낙스(G.W. Knox)에게 세례를 받았다. 일본에서 이루어진 최초 한국인 개신교 세례였다.

이수정은 세례 받은 직후 일본 주재 미국성서공회 총무 루미스(H. Loomis)의 지원을 받으며 성경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리하여 1884, 한문 성경에 이두(吏讀) 토를 단 4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요코하마에서 인쇄하였고 이듬해 18852월에는 순한글본 신약젼 마가복음셔언해를 인쇄했다.

한국의 마게도니아인의 호소

이수정의 꿈은 조선도 기독교를 받아들여 일본처럼 개화되는 것이었다. 그는 성경을 번역하면서 동시에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던 미국인 선교사들을 통해 미국 교회에 선교사를 한국에 보내 달라는 편지(18831213)를 썼다. 그 편지는 미국에서 발행되는 선교 잡지에 실렸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된 나 이수정은 미국에 있는 형제 자매님들에게 문안합니다. 믿음과 진리의 능력으로 주님의 크신 은총을 입은 제가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은 한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도움으로 우리는 사탄에 넘어가지 않고 믿음을 굳게 지킬 수 있게 되었으니 찬양과 영광을 주님께 드리는 바입니다.”

그의 편지는 서두부터 바울의 편지 같다(1:1). 바울이 자기 동족의 구원을 향한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듯(11) 그의 편지도 동족의 구원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직도 수천만 우리 민족은 하느님 참된 도를 모른 채 이방인처럼 살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들은 주님의 구속하시는 은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퍼져 나가는 오늘과 같은 시대에도 우리 나라는 불행하게도 지구 한쪽 구석에 박혀 있어 기독교가 주는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을 한글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이것을 통해 복음이 확산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잘 되도록 저는 밤낮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가 성경을 번역한 것도 민족 구원을 위함이었다. 그러나 보다 확실하고 효과있는 방법은 선교사가 직접 한국에 나와 선교하는 것이었다. 그 일을 위해 남은 생을 바칠 각오도 되어 있었다.

저는 비록 영향력이 없는 인물이지만 여러분이 선교사들을 파송만 해준다면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간곡하게 바라는 바는 지금 당장이라도 몇 명을 이곳 일본에 보내 여기서 일하고 있는 이들과 협의하면서 사업 준비를 하도록 해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안전하고도 적절한 방법입니다. 제가 드린 말씀을 진지하게 검토해 주시기를 간절하게 빌고 원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제 기쁨은 한이 없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종, 이수정 드림

이 편지 때문에 이수정에게 한국의 마게도니아인’(Macedonian of Korea)이란 별명이 붙었다. 그리고 그의 소원대로 편지가 서방에 전달된 1년 후 미국 교회는 한국 선교를 결심하였고 18852월 장로교의 언더우드, 감리교의 아펜젤러와 스크랜튼 가족 등 한국 선교 개척단이 한국으로 가기 위해 일본에 들렀을 때, 이수정은 그들에게 한국 언어와 문화를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그 중 선발대로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188545일 부활주일에 인천에 상륙했는데 이수정의 꿈에 나타났던 낯선 두 사람처럼 그들은 조선에 가장 귀한 책을 한보따리씩 갖고 들어왔다. 바로 이수정이 번역한 한글 쪽복음, 마가복음이었다.

바울의 꿈속에 나타난 마게도니아인처럼, 이수정은 서구 교회의 선교 뱃길을 아시아의 마지막 은둔국 한국 쪽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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